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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행

중세 종교극, 도시를 무대로 삼다:장소 특정형 공연의 시작

by 스티븐C 2025. 7. 3.

중세 유럽의 원형 극장은 오늘날과는 다른 방식으로 관객과 배우를 밀접하게 연결했다. 맨션(mansion), 플라테아(platea), 성당과 도시를 넘나들던 성극의 무대 구성과 대표작 《인내의 성》, 몰입형 연극 <몬트리올 예수>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중세 "Theatre in the Round"의 역사와 공간성을 살펴본다. 이 전통은 오늘날 이머시브 씨어터(Immersive Theatre), 장소 특정형 공연(site-specific performance), 거리극(street theatre), 실험적 도시극 등 현대 공연예술의 미학과 구조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중세연극
중세연극[출처]https://aizzim21.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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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그리스 연극의 황금기가 저물고, 에우리피데스사망한 기원전 406년 이후 1,500년 동안, 유럽 대륙에서는 연극의 공식적인 형태가 거의 자취를 감췄다. 이 긴 단절의 시간을 지나, 10세기경, 기독교 전례극에서 다시 등장한 **중세 연극(Medieval Theatre)**은 유럽 전역에 걸쳐 약 500년간(10세기~15세기) 깊은 종교적·문화적 표현 양식으로 자리 매김하게 된다.

초기 중세 연극은 성서의 장면을 단순한 성가와 교회 예전 안에서 재현하는 데 그쳤지만(시노그래피카페, 역사기행 중 🔗https://mynote9078.tistory.com/entry/제대-위의-시노그래피-중세-종교극의-탄생 참조

점차 서사적 구성력, 무대 장치, 배우의 연기가 더해지며 하나의 독립된 연극 예술로 진화하게 된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발전 중 하나는 바로 **원형 극장(Theatre in the Round)**이라는 무대 형식의 도입이었다.

중세의 원형 극장은 단지 관객이 무대를 둘러싸는 배치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이동성, 순례성, 몰입성—중세 성극의 핵심적 미학이 이 무대 구조 안에 고스란히 구현되었다. 무대와 관객, 공간과 이야기, 현세와 성서적 시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관객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닌 참여자로 이끌리게 된다.

현대의 건축적 ‘원형 극장’과는 구조적으로 닮아 있으나, 중세의 Theatre in the Round는 **맨션(mansion)**과 **플라테아(platea)**의 조합을 통해 도시 전체를 극장화하며 이동형 서사를 가능케 했다. 《인내의 성(The Castle of Perseverance)》 같은 도덕극이나, 현대적으로 이 전통을 재해석한 영화 <몬트리올 예수,1989> 에서의 몰입형 연극은 관객 몰입, 장소 특정성, 성스러운 공간 체험이라는 측면에서 이 무대 형식이 지닌 힘을 선명히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미스터리 플레이
1547년 발랑시엔에서 공연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미스터리(The Mystery of the Passion and Resurrection of Our Saviour and Redeemer Jesus Christ)" 연극의 무대 [출처]https://www.1st-art-gallery.com/Hubert-Cailleau/The-Scenery-For-Valenciennes-Mystery-Play-1547.html

1. 교회에서 광장으로: 중세 연극의 공간 이동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약 500년간 연극사적 형태가 거의 자취를 감춘 시기를 지나, **10세기경 다시 등장한 중세 연극(Medieval Theatre)**은 유럽 전역에 걸쳐 약 5세기부터 15세기까지 지속된 깊은 종교적, 문화적 표현 형태였다. 초기에는 교회 안에서 라틴어 미사성가대 사이의 짧은 응답극으로 시작되었으며, 가장 오래된 극적 대사는 10세기경 독일과 프랑스에서 나타난 **"Quem Quaeritis"(누구를 찾느냐)**로, 부활절 아침 무덤을 찾은 여성들과 천사 간의 대화 형식이었다. 이 장면은 점차 시청각적 재현으로 확장되었고, 복잡한 서사 구조와 무대장치, 다양한 등장인물이 필요해지면서 성당 내부로부터 물리적 제약이 없는 야외로 나가게 된다.

연극이 교회 밖으로 확장된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었다. 시각적 재현의 필요성, 대중의 이해를 돕는 언어와 공간의 변화가 일어났고, 연극은 점차 풍자적이고 세속적인 요소를 띠기 시작하면서 교회의 규범을 위반하거나 신성 모독적인 논란을 초래하였다. 이에 따라 13세기경 교황청은 일부 지역에서 연극 금지령을 내리며 통제를 시도했고, 이는 곧 연극의 주도권이 교회에서 점차 이탈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세속 길드(guilds)**였다. 이들은 시민 공동체와 협력하여 **사이클 플레이(Cycle Plays)**를 조직했고, 도시 곳곳의 광장과 거리, 성문 앞 등 다양한 장소를 무대로 삼아 대규모 순회 연극을 실행했다. 여기서 사이클 플레이란 보통 성서 이야기 전체를 여러 에피소드로 나눠, 하루 또는 며칠 동안 도시 전역을 돌며 공연하는 방식이었다. 각 에피소드는 창세기부터 최후의 심판까지 이어지는 성서 서사를 시간 순으로 재현하는 '대하드라마'라고 보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발전은 **원형 극장(Theatre in the Round)**이라는 무대 형식의 등장이었다. 이는 단지 관객이 무대를 360도 둘러싸는 방식-또는 각 에피소드를 라운딩하며 보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동성, 순례성, 몰입성이라는 중세 연극의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구조로, 무대와 관객, 공간과 이야기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성극의 체험적 본질을 강화한 형식이었다.

중세의 Theatre in the Round주로 **프랑스 오랑주(Orange)**나 영국 요크(York), 콘월(Cornwall)의 라운드형 원형극장과 같은 둥근 공간에서 공연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아레나형 극장’**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으면서도, 그 본질과 활용 방식에 있어 매우 다르다. 이는 **맨션(mansion)**과 **플라테아(platea)**의 결합, 도시 전역을 활용한 순례형 연극, 그리고 관객을 능동적 참여자로 만드는 극구조로 설명할 수 있다. 대표작 **《인내의 성(The Castle of Perseverance)》**이나 몰입형 연극 **<몬트리올 예수>**와 같은 작품을 통해, 중세 원형극장은 장소 특정성과 관객 몰입이라는 관점에서 오늘날의 공연공간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2. 맨션(Mansion)과 플라테아(Platea): 성스러운 무대 구성의 핵심

**맨션(Mansion)**은 중세 연극의 핵심 무대 구조다. 이것은 장면마다 다른 장소를 표현하는 작은 구조물로, 예를 들어 예루살렘 성문, 나사렛 가정집, 지옥의 입구, 천국의 문 등을 상징적으로 구성했다. 맨션은 독립된 공연 공간이 아니라, 상징적 표지이며, 배우들은 맨션과 맨션 사이를 이동하며 장면을 연결해간다.

이 맨션들이 둘러싸고 있는 중심 공간이 바로 **플라테아(Platea)**이다. 이는 비워진 광장, 교회 앞마당, 시청 앞 등 공공의 넓은 공간으로, 다양한 장면이 교차하는 유동적인 무대 역할을 한다. 배우는 플라테아를 자유롭게 활용하며, 관객의 시선을 수평적으로, 때로는 수직적으로 이동시킨다. 이러한 무대 구성은 관객을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참여적 시청자(participatory witness)**로 전환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중세 시대의 종교극인 '순환극(Cycle Plays)'의 공연 방식
Theatre in the Round 중세 시대의 종교극인 '순환극(Cycle Plays)'의 공연 방식 [출처]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f/fc/Luzerner_Osterspiel.jpg

3. 원형 구조의 극적 구성:《인내의 성(The Castle of Perseverance)》 분석

《인내의 성》은 15세기 중엽 영국에서 작성된 도덕극으로, 중세 Theatre in the Round 형식을 가장 정교하게 구현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대본 안에는 무대 배치에 대한 도면과 지시가 포함되어 있으며, 원형의 중앙에는 인간의 영혼을 상징하는 성이 위치하고, 사방에는 천사, 악마, 미덕, 악덕 등의 인물들이 배치된다.

  • 중심: 성(Castle)은 인간 영혼이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상징적 공간
  • 동쪽: 천국의 문과 천상의 인물들 (신, 천사, 미덕)
  • 서쪽: 지옥의 입구, 악마들, 유혹의 세력
  • 남쪽과 북쪽: 도덕적 시험과 현실의 유혹을 가시화하는 인물들

관객은 이 전체 공간을 둘러싸고 앉거나 서서, 배우들의 움직임과 무대 간의 전환을 직접 목격한다. 이 공연은 '관객의 시선'이 무대 중심이 아닌, 다방향성 속에서 유동적으로 이동하게 한다는 점에서 극히 현대적인 감각을 지닌다.

또한 이 극의 대사 구성은 신학적 논변, 인간 심성의 고백, 신비적 상징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교리적 성찰과 신앙적 체험을 목표로 한다. 관객은 극을 통해 도덕적 선택의 갈등을 직접 목격하고, 그것이 자기 삶과 무관하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The Castle of Perseverance
The Castle of Perseverance [출처]https://theaterhistoryonline.blogspot.com/

4. 사이클 플레이(Cycle Play)와 페이지언트 웨건(Pageant Wagon)

중세 도시의 성극들은 종종 사이클 형태로 연출되었다. 특히 영국의 요크, 체스터, 코벤트리 등에서는 교회와 길드가 협업하여 성서의 장면을 각 길드가 하나씩 맡아 공연했다. 이때 사용된 것이 페이지언트 웨건이다. 이는 수레 형태의 무대 장치로, 각 수레에 한 장면이 구성되어 있고, 도시 전체를 순회하며 공연되었다.

관객은 도시 곳곳에 마련된 정차 지점에서 웨건이 도착하길 기다리며, 특정 장면을 본 후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여 또 다른 장면을 관람했다. 이는 마치 움직이는 원형극장의 느낌을 주며, 관객이 배우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배우와 무대가 관객에게 다가가는 형태였다.

요크에서 상연된《요크 사이클(York Cycle)》은 약 48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창세기부터 최후의 심판까지를 다루며, 각 장면은 수공업 조합들이 맡았다. 예를 들어:

  • 배 목수 조합: 노아의 방주
  • 금세공업 조합: 성삼위일체의 장면
  • 도살업 조합: 유다의 배신

이러한 방식은 공동체적 참여, 교리 교육, 도시 전체의 극장화를 실현하며,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원형 극장이 되는 독특한 경험을 창출했다.

요크사이클 이미지
요크사이클 이미지,[출처]https://www.yorkmysteryplays.co.uk/

5. 중세적 몰입감의 절정: 장소 특정성(Site-Specific Theatre)의 기원

중세 연극의 가장 강력한 미덕은 장소와 이야기의 일치성이다. 예를 들어 성서 속 '수난의 길(Via Dolorosa)'을 따라 구성된 극에서는 예루살렘의 실제 지형을 모델로 삼은 공간 배치가 이루어졌고, 공연은 물리적 장소 이동과 함께 이루어졌다.

**영화 <몬트리올 예수>**는 이러한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대표작이다. 1989년 드니 아르캉(Denys Arcand) 감독이 연출한 이 캐나다 영화는, 현대 사회에서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재해석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다니엘(Daniel)은 연극배우이자 신학적 이상을 품은 연출가로, 부활절을 맞아 몬트리올의 성당과 도시 전역을 무대로 한 예수의 생애를 다룬 공연을 기획한다.

이 연극은 단순한 무대 위 공연이 아니라, 관객을 실질적인 움직임 속으로 끌어들이는 몰입형, 순례형 연극이다. 다니엘이 연기하는 예수의 삶은 몬트리올의 실재 공간 속에서 펼쳐지며, 각 장면은 성서적 기억을 도시적 장소에 겹쳐지도록 구성되어 있다:

몬트리올 예수(1989)
몬트리올 예수(1989) ,[출처]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803060251937

성당 앞 계단: 극적 정치성과 군중의 감정 _예수가 군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빌라도와 마주하는 장면이다. 격앙된 군중, 조롱과 침묵, 그 속의 긴장감은 공공장소의 정치성과 드라마의 극적 구성이 만나는 강렬한 예다. 도시 공간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를 생성하는 주체가 된다.

 호수와 믿음: 공간으로 구현된 신앙의 경계 _잔잔한 호수 위에서 벌어지는 예수와 베드로의 장면은, 물리적 공간이 믿음과 의심의 경계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태복음 14:31)는 대사는 공간을 신앙적 체험의 장으로 전환시킨다. 호수는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심연과 구원의 메타포로 기능한다.

언덕 위의 십자가: 현실 공간의 신화화 _몬트리올 시내를 내려다보는 언덕에서 펼쳐지는 ‘십자가 처형’ 장면은, 도시를 하나의 신화적 풍경으로 변모시키는 순간이다. 카메라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담으며, 현실의 도시를 상징적 ‘갈바리아’로 환치한다. 장소는 더 이상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신화적 의미를 획득하는 시노그래픽 장소가 된다.

지하공간과 부활: 침묵 속의 환희_ 성당 지하의 납골당에서 펼쳐지는 부활의 암시는, 침묵과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상징한다. 이 장면은 공간과 감정의 교차점을 예민하게 포착하며, 무대장치와 감정의 시노그래피가 만나는 지점을 드러낸다.

이 영화는 연극 속 공연 장면뿐 아니라, 연극을 준비하고 둘러싸고 있는 배우들의 인간적인 갈등, 현대 사회의 종교적 냉소주의, 상업성과 순수성의 대립 등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몬트리올 예수>는 결국, 그리스도 서사의 장소 특정성과 이머시브 형식을 현대 도시 속에 되살리는 시도이며, 중세의 원형극장 전통을 살아 있는 담론으로 끌어올리는 영화적 성취를 이룬다.

오늘날 <몬트리올 예수>는 단지 영화로서가 아니라, 현대 도시극의 이정표로 재조명되고 있으며, 중세 성극의 공간성과 철학이 현대적으로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이러한 도시들은 단순히 중세 연극의 유산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현대적 창작과 관광 콘텐츠, 교육 프로그램과 연결하여 살아 있는 공연 예술의 장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몬트리얼 예수
몬트리얼 예수,1989,[출처]https://www.catholictimes.org/

마무리

이처럼 중세 연극에서 비롯된 Theatre in the Round의 미학은 오늘날 무대 구조의 형식을 넘어, 서사와 공간, 관객의 움직임까지 포함하는 통합적 시노그래피 개념으로 확장된다. 관객은 이제 고정된 시점에서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이야기의 공간을 걸으며, 마주하며, 동참하는 존재가 된다.이 전통은 오늘날 이머시브 씨어터(Immersive Theatre), 장소 특정형 공연(site-specific performance), 거리극(street theatre), 실험적 도시극 같은 현대 공연예술의 다양한 흐름 속에서도 살아 숨 쉬며 재해석되고 있다. 중세의 무대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 공간 기반 공연예술의 뿌리이자 미래의 실험을 위한 원형이기도 하다.

각 도시별 위치와 정보를 한눈에 파악하는 중세 원형극장 공연 도시 지도 링크 참고:

🔗 York Mystery Plays
🔗 Oberammergau Passion Play
🔗 Festival of Saint Francis in Assisi
🔗 Festival de Teatro Medieval de Burgos 
🔗 Český Krumlov Castle Theat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