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뉴욕에서 전설을 남긴 이머시브 공연 《슬립 노 모어》가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막을 올립니다. 유령이 된 관객은 폐허 속을 거닐며 꿈과 공포, 기억의 미궁을 탐험합니다. 그곳은 더 이상 무대가 아니라, 감각과 서사의 전복입니다.
🎭 불면의 밤, 대한극장으로부터 시작된 감염
나는 십 여년 전, 사이트스페시픽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연극 양식을 연구하던 중 이 공연을 처음 알게 되었다. 뉴욕 27번가, 그 ‘맥키트릭 호텔’이라 불리는 장소에서의 사이트스페시픽이었다. 검은 복도, 허물어진 벽지, 무심히 흘러나오던 1930년대 스탠더드 넘버들. 그것은 연극이라기보다, 하나의 폐허를 거닐며 범죄현장에 투입된 목격자가 되어야 했다. 그 후로 또 몇 10여년이 지났다. 이제, 그 밤이 서울 충무로에 온다.
🛠️ 이머시브 시어터의 진수
《슬립 노 모어》는 2003년 런던에서 시작되어, 2011년 뉴욕 맥키트릭 호텔에 정착한 후 2025년 1월까지 14년간 오픈런으로 공연된 전설적인 이머시브 시어터다. 현재는 뉴욕 공연이 종료되었지만, 레퍼토리는 현재 상하이에서 새로운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연극과 무용, 설치미술, 조명, 음향디자인이 한데 얽혀, 공간 자체를 무대로 활용하는 장르의 정수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1930년대의 음울한 누아르적 배경에 덧입혀, 하나의 거대한 심리적 꿈으로 탈바꿈시킨다. 관객은 흰 마스크를 쓰고, 배우들을 따라다니며 6층에 펼쳐진 100개가 넘는 방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공간은 기억의 층위다. 병원, 공동묘지, 박제소, 사탕가게, 맥베스의 침실, 맥더프의 유아방, 심문실, 카바레 무대, 로비의 낡은 전화기까지. 이들은 각기 분절된 서사이자, 하나로 엮이면 광기의 소용돌이가 된다. 관객은 그 중심에서 냄새를 맡고, 손으로 만지고,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남겨지는 공포를 감각한다. 이것이 바로, 잠들수 없는 밤이다.
🌃 서울 충무로, 감각의 전복이 시작된다
서울 대한극장은 2024년 9월, 영화관으로서의 긴 역사를 마감하고, 공연예술을 위한 새로운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이 상징적 공간은 이제 세계적 이머시브 공연의 한국 첫 무대가 된다. 2025년 8월, 서울판 슬립 노 모어는 기존 뉴욕 매키트릭 호텔 못지않은 스케일과 디테일을 선보일 예정이다. 공연 제작을 담당하는 미쓰잭슨은 영국의 펀치드렁크와 독점 IP 계약을 체결하며, 뉴욕 오리지널의 정수를 유지하면서도 한국적 맥락을 담을 계획이다.
아주 오래 전 『벤허』 필름이 돌아가던 공간은 이제 관객이 직접 걷고 탐색하는 ‘극장’이 된다. 이 극장은 더 이상 무대를 중심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관객이 자신만의 루트를 선택하고, 하나의 방에서 사적인 경험을 하고, 배우의 뒷모습을 따라 어두운 복도를 달리는 시간은, 그 자체로 독립된 예술이다.
👁️ 관객은 누구인가
여기서 부터는 뉴욕 공연에 대한 리뷰이다. 첼시의 허름한 골목, 낡은 호텔 입구. 마치 클럽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관객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시간이 되면 안내원 같은 진행자가 다가와, 클럽 입장 때처럼 스탬프를 손등에 찍어준다. 그리고 그들은 정교하게 꾸며진 19세기쯤의 호텔 로비로 들어선다. 다이얼 전화기, "McKittrick" 마크의 천 냅킨, 열지 않은 오래된 와인들, 그리고 고요한 1930년대의 스탠더드 재즈가 흐르는 공간. 관객은 술을 주문하며 기다리고, 무대가 아닌 세계로의 입장을 준비한다.
입장 시간이 되면, 관객은 랜덤으로 배정된 카드 번호에 따라 입장한다. 함께 온 일행과도 흩어질 수 있다. 이제 하얀 마스크를 써야 한다. 여기서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Eyes Wide Shut』이 떠오른다. 그 마스크는 **코미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의 소극 가면을 연상케 한다.
“가면은 객석에 좌석을 배치와 무대 사이의 경계와 같다. 관객을 무질의 특징으로 만들어버리고, 익명성을 제공한다. 유령같이 존재하게 하여서 관객이 혼자 공간을 탐험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펀치드렁크(Punchdrunk)**의 설립자이자 예술 감독인 **펠릭스 바렛(Felix Barrett)**의 말이다. 이제 관객은 그 가면을 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각 층으로 흩어지는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관객은 유령이다. 동시에 탐험가다. 가면은 익명성과 함께 감정의 투영을 가능하게 한다. 누군가는 사탕가게에서 오래 머물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병실의 서랍을 열어보기도 한다. 일부는 배우와 단둘이 방에 갇혀 손에 이끌려 나가기도 했다. 말이 없는 이 공연에서, 배우는 눈빛과 몸짓으로 만 말한다. 관객은 그 메시지를 읽기 위해 침묵해야 한다. 그래서, 이 공연은 명상이며 몰입이고, 은밀한 탐닉이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마지막이다. 연회장에서 모든 관객이 모인다. 맥베스 부인은 욕조 위에서 비명을 지른다. 무대는 없고, 배우들은 관객 사이를 유령처럼 흐른다. 음악은 점점 빨라지고, 조명은 섬광처럼 번쩍인다. 악마들의 디스코가 시작된다. 그것은 종말이자 기념이다. 당신이 무엇을 보았든, 그것은 당신의 이야기다.
🌀 《슬립 노 모어》의 진정한 정체성 — 그림자를 이루고 있는 파편들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는 셰익스피어의 **피비린내 나는 『맥베스』**를 모티브로 한 펀치드렁크(Punchdrunk) 극단의 대표작이다. 공연은 최고의 요소들을 세밀하게 실현해낸 조각난 환각과도 같다. 공동연출자인 **펠릭스 바렛(Felix Barrett)**과 안무가인 **맥신 도일(Maxine Doyle)**은 하나의 이야기를 6개 층에 걸쳐 이미지로 흩뿌려 놓았다. 모든 공간은 **의도된 장소(site-specific)**로, 각각의 장면이 무대가 된다.
이 공연은 하나의 스토리를 병렬적이거나 다층적으로 전개하며, 관객에게는 거대한 자유가 주어진다. 하지만 예약하기 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임산부, 어지럼증 환자, 밀실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입장을 삼가야 한다.
관객은 르네상스 시대 전염병 의사가 쓰던 백골 같은 부리 마스크를 착용한 채, 소름끼치는 장면 앞에 서게 된다. 약 3시간 동안 병동, 공동묘지, 연회장, 사탕가게, 형사 사무실을 떠돌며, 유령처럼 존재하게 된다.
그 공간은 섬세한 디테일로 가득하다. 머리카락 샘플, 동물 뼈, 피 묻은 오브제,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술도구들... 이 모든 것들은 관객이 직접 열어보고 만질 수 있다. 이는 마치 박물관이 아닌, 기억의 심층을 뒤적이는 의식 같다.
음향디자이너 **스티븐 도비(Stephen Dobbie)**가 만든 불안정한 소리의 풍경, 그리고 세 마녀의 유령 같은 조명디자인은 관객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 모든 파편은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의 기억 속에서 저마다 다른 망령의 형태로 남는다.
이것이야말로 《슬립 노 모어》의 본질이다. 연극이면서, 기억이고, 일종의 무의식이다.
2025년, 서울에서 그 무의식은 다시 펼쳐진다. 당신은 유령이 되어, 도시의 가장 은밀한 공간을 거닐게 될 것이다. 이 공연은 단지 극장이 아닌, 서울이라는 도시 그 자체를 다시 보는 방식이 된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이 도시를 걸을 수 없게 만든다.
결국, 우리는 말한다. 잠들지 말 것. 지금 이 도시는, 슬립 노 모어.
🧠 뭔가 사악하고 위험한 꿈으로의 감염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극장에서 여러 번 보았다. 하지만 이처럼 주연배우가 왕을 암살한 후, 몇 개 층을 오르락내리락하며 허둥대는 그를 직접 따라다닌 경험은 없었다. 빈 방 안, 기도 중인 맥더프 부인을 목격하는 일 또한 오직 이곳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슬립 노 모어》에서 같은 경험을 하는 관객은 단 한 명도 없다. 사전지식이 도움은 되겠지만,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맥베스의 통찰을 얻기보다는, 그의 호흡과 광기, 피와 공포를 직면하는 것이다.
이 공연은 무척 분주하기 때문에 체력이 필요하다. 편한 신발을 신고, 근접한 신체 노출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느긋한 관람이 아닌, 끊임없는 이동과 몰입을 요구한다. 모든 관객의 루트가 하나하나 다 달라서, 이 공연은 늘 특별한 형태의 개인적 기록으로 남을 수도 있다.
관객은 특정 공간에서 병적인 징후를 포착하고, 사건들을 조합하며 서사를 재구성한다. 대사가 없기 때문에, 몸과 공간이 이야기를 전달한다. 댄스-연극-호러라는 장르적 파편이 뒤섞인 이 작품은, 히치콕적인 심리극과 셰익스피어의 비극성을 혼합한 몽환적 리추얼이다.
결국 관객은 마스크 뒤에서 유령이 되고, 그저 사건의 주위를 맴도는 무력한 존재로 남는다. 하지만 그 무력함이야말로 이 공연이 연극의 본질을 되묻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으며, 결국 어떤 감정의 잔향을 남기고 퇴장하는가?
《슬립 노 모어》는 관객의 꿈을 감염시킨다. 이것은 더 이상 연극이 아니다. 이것은 도시 속 무의식의 대서사시다. 조금이라도 모험심이 있다면, 이 공연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나는 아주 늦은 밤, 망연한 채로 극장을 빠져나왔다. 대한극장에서 돌아나오는 나의 신발에 하얀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것은 단지 무대의 먼지가 아니었다. 내가 지나온 꿈의 조각, 내가 밟고 지나친 시간의 잔해였다.
2025년 서울 충무로에서 새롭게 개막하는 《슬립 노 모어》, 대한극장은 지금 막 그 긴 꿈의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누군가는 다시 그곳에서 유령이 될 것이다. 오픈런의 서막은 이제, 서울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꿈의 파편을 신발 밑에 품은 채 이 도시를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