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공연

불타버린 극장의 변주곡: 리마 시립극장 화재와 그 이후, 잿더미 위의 시노그래피”

by 스티븐C 2025. 6. 9.


1998년 리마 시립극장을 집어삼킨 화마. 그 폐허 위에서 예술가들은 무엇을 보았는가? 루이스 롱기의 시노그래피적 시선과, 극장의 재건을 넘어선 새로운 레퍼토리 기획. 리마의 관광코스로까지 확장된 연극적 복원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태그:
#리마시립극장 #테아트로포레로 #루이스롱기 #페루화재 #시노그래피 #공간복원 #연극무대 #도시재생 #예술기획 #리어왕 #페루여행 #리마관광코스 #공공예술

테아트로포레로의 화재 현장에서의 공연
Municipal De Lima [출처]https://archello.com/project/intervencion-en-las-ruinas-del-teatro-municipal-de-lima#stories

+ “리마가 불탔다 —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복원하는가?”

1998년,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한 편의 거대한 연극이 무대도 조명도 없이 벌어졌다.
그 무대는 바로 ‘테아트로 포레로(Teatro Forero)’, 1920년 개관 이래 리마 시민들의 자존심이자 문화적 심장이었던 시립극장이었다.

불길은 단지 건물을 삼킨 것이 아니라, 남미 예술사에서 가장 찬란한 한 페이지를 통째로 불태워버렸다. 그 잔해 위엔 철근만이 앙상히 남았고, 마치 인간의 관절이 동시에 울부짖는 듯한 고통의 소리가 그 현장을 감쌌다.

이 비극적인 순간은 어딘가 낯설지 않다.
10년 뒤, 서울에서도 국보 제1호 숭례문이 화염에 휩싸여 전소되는 사건이 있었다.
두 사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응했다.
하나는 **‘창조적 재구성’**으로, 다른 하나는 **‘정체성 보존적 복원’**으로.하지만 공통적으로 “불이라는 재난 앞에서 도시가 기억을 새롭게 조직하려 했다”는 점에서 깊은 본질적 연결을 보여준다.

리마 시립극장 (Teatro Forero)서울 숭례문

화재 발생 시기 1998년 2008년 2월 10일 밤 8시 40분경
소실 규모 전소. 지붕, 무대, 객석 등 구조 전반 소실 2층 누각부 전소, 전체 구조 붕괴
사회적 반응 “국가적 자존심의 상실”이라 표현됨 “국보 제1호 소실”이라는 국민적 충격
복구 시작 약 10년 뒤, 국민 성금으로 2009년 공사 시작 2008년 바로 복구 착수, 2013년 복원 완료
복원 완료 2010년 10월 2013년 4월 29일
복원 방식 폐허의 의미를 되새기며 “창조적 시노그래피적 재건” 과학고증을 바탕으로 “완전 원형 복원”
문화적 활용 연극무대, 관광코스, 도시 시노그래피 공간화 전통의례 재개, 야간개방, 상징적 공간 유지

테아트로포레로의 화재 현장
August 2, 1998 - Lima, PERU - LIMA, 2 DE AGOSTO DE 1998.INCENDIO EN EL TEATRO MUNICIPAL DE LIMA. EL SINIESTRO SE INICIO DEBIDO A UN CORTO CIRCUITO. .FOTO: ENRIQUE CUNEO EL COMERCIO Lima PERU - ZUMA [출처]https://www.imago-images.com/st/0085026863

+ 흥미: “화마 위에 피어난 기획 – 루이스 롱기의 제안”

무대미술가이자 건축가인 **루이스 롱기(Luis Longhi: 1954년, 페루 푸노(Puno) 출생 )**는 이 화마의 흔적을 “또 하나의 발견된 시노그래피”로 해석한다. 그는 제안한다. “무너진 이 극장, 이 보이드(void)를 단순한 복원의 대상이 아니라, 예술적 공간으로 다시 상상해보자”고.

그의 제안은 초기에는 조롱받았다. ‘잿더미에서 무슨 예술이냐’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건축가, 연출가, 배우 등 예술가 집단은 그 제안의 감각적 진정성을 간파한다.

롱기와 예술가들은 퍼즐을 맞추듯 현장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단지 원형 복원이 아닌, **“상실된 장소를 시학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그들의 기획이었다.


+ 욕망: “극장이 무대가 아닌, 무대가 극장인 레퍼토리”

그들이 기획한 첫 레퍼토리는 단순히 상연된 작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장 자체가 시노그래피'**인 새로운 실험이었다.

공연은 뚫린 지붕 아래에서 진행되었고, 비가 오면 관객은 우산을 펼쳐야 했다. 때로는 장화를 신어야 할 정도였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오셀로」, 괴테의 「파우스트」가 화재 잔재 그 자체를 무대로 삼아 연출되었다.

리어왕이 빗속에서 딸의 시신을 안고 절규할 때, 무대 위에는 진짜 비가 쏟아졌다.
이 물리적 조건은 특수효과가 아닌, 실제 재난 공간의 물리적 작용이었다. 그 현장은 무대미술가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이미 완성된 은유적 공간이었다.

롱기는 이 행위를 “디자인design이란 단어의 어원을 되짚는 것”이라 말한다.
디바인(divine, 신성한)”과 “사인(sign, 표지)” - 극장의 재구성은 단순한 건축이 아니라, 공간 자체의 신화를 다시 쓰는 작업이었다.


테아트로포레로의 화재 현장에서의 공연
Scenography for King Lear,1999 [출처]https://hiddenarchitecture.net/scenography-for-king-lear/

✈️ 행동: “극장이 리마의 관광코스로… 그리고 오늘의 모습”

이 프로젝트는 단지 예술적 실험에 머물지 않았다.
이 공연 자체가 리마의 관광 상품이 되었고, “화재의 흔적을 딛고 선 예술 공간”은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 레퍼토리는 한 때 리마의 유명한 관광 상품이 되기도 하였다.”

이는 단지 복원된 극장이 단순히 예술 공간으로만 기능한 것이 아니라,
🔥 화재 이후의 폐허를 무대화한 레퍼토리
📸 관광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체험형 예술 콘텐츠로 활용되었다.

물론 그 이후 

재건은 쉽지 않았다. 화재 이후 10년이 지나서야 복구 공사가 국민 성금으로 시작되었고, 18개월간의 공사 끝에 2010년 10월, 새로운 리마 시립극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이 공간은 이제 단지 공연장이 아니라, 상실과 복원의 은유를 품은 도시의 시노그래피적 지점으로 남아 있다.

관광객들은 이곳을 방문해 공연을 보며, 건축을 느끼고, 불길이 남긴 상처를 가늠한다. 마치 거대한 도시극장을 순례하듯 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HJU_887BLcI&t=4s

리어왕

+ 맺으며: “공간은 무대가 될 수 있고, 무대는 도시가 될 수 있다”

리마 시립극장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극장이 아니다.
그곳은 연극과 무대, 시노그래피와 도시, 재난과 복원이 맞닿은 상징적 공간이다.

우리는 이 사례를 통해 '시노그래피'란 단어의 본질을 다시 묻는다.
장식을 넘어, 의미를 조직하는 행위로서의 시노그래피.
불타버린 벽, 날아가 버린 천장, 그 빈자리가 만들어낸 압도적인 시각 언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의 회복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