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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권력/무대로의 틈입

큐비즘과 오르피즘 - 무대에 오르다

by 스티븐C 2025. 7. 5.

피카소, 브라크, 엑스터, 마티스—그리고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윌렘 드 쿠닝까지. 큐비즘과 오르피즘의 시각 실험이 어떻게 무대 위에서 구현되었고, 그것이 추상표현주의와 현대 시노그래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살펴본다. 형태 해체와 색채 리듬이 교차한 무대의 실험을 통해, 공간·몸짓·감정이 융합된 시노그래피의 역사적 전환을 추적하는, 감각적이면서도 사유 깊은 비평 아카이브로 초대합니다

Mark Rothko의 Orange and Yellow,
Mark Rothko의 Orange and Yellow,1956,ⓒ위키아트:www.wikiart.org/

무대 위의 입체와 분할, 콜라주,액션 그리고 침묵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1881–1973) – 입체의 시선, 무대로 확장되다

대표 무대작품: 퍼레이드(Parade,1917, 발레 뤼스)

주요 키워드: 분석적 큐비즘, 기하학 분할, 무대 인형, 시각의 병치, 시노그래피 실험 

피카소는 회화의 공간 실험을 무대로 옮긴 대표적 사례입니다. Parade 는 그의 유일한 본격 무대작품으로, 분석적 큐비즘의 원리를 무대의 평면과 입체 장치에 적용한 작품입니다. 특히 대형 무대 인형과 의상은 형태 해체와 병치를 통해 무대 자체가 하나의 큐비즘 캔버스처럼 보이도록 했습니다. 그는 이 시기에 무대를 "움직이는 조형 예술의 무대"라고 불렀으며, Parade는 현대 시노그래피 개념의 선구적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퍼레이드 장 콕토(Jean Cocteau, 대본), 에릭 사티(Erik Satie, 음악), 레오니다스 마시느(Léonide Massine, 안무), 그리고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무대미술과 의상 디자인)가 협업한 발레 작품으로, 1917년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Ballets Russes)*에 의해 파리에서 초연되었습니다.

피카소의 theatre-curtain-for-parade
피카소의 theatre-curtain-for-parade,1917,[출처] Wikimedia Commons

+ 조르주 브라크 (Georges Braque, 1882–1963) – 고요한 건축적 시선

대표 무대작품: Thésée (1947, 오페라 무대)

주요 키워드: 질감 중첩, 건축적 구성, 시점의 조형, 콜라주, 시간의 층위

브라크는 피카소와 함께 큐비즘을 창시했지만, 무대에서는 보다 정적이고 건축적인 해석을 시도했습니다. 그의 무대 작업은 콜라주적인 질감 분할과 평면의 중첩을 통해 무대가 시간의 레이어를 담는 ‘정지된 조형물’처럼 보이도록 구성했습니다. 특히 Thésée 무대에서 보이는 조형 구조는 조각과 회화, 건축이 융합된 입체적 무대로, 오늘날의 모듈형 FM입니다.

**《Thésée》**는 오페라 작곡가 레오나르도 마시네(Leonardo Mascheroni)가 작곡한 작품으로, 브라크는 여기서 무대와 의상에서 큐비즘적 요소를 강하게 드러내며, 복잡한 공간적 구성과 기하학적 형태들을 활용하여 무대와 관객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강조했습니다. 아래 그림은《Thésée》를 위한 무대초안은 아니지만 Atelier VIII 처럼 브라크의 특유의 기하학적 평면들이 층위적으로 겹쳐지며, 무대 공간을 마치 ‘정지된 건축물’처럼 구성했습니다. 단색 톤의 질감 분할과 수직적 구성이 지배하며, 등장인물은 이 정적 구조 속을 유영하듯 등장합니다.

특히, 이 작품은 브라크가 단순히 무대 디자인에 그치지 않고, 극적인 공간을 시각적으로 재구성하며, 큐비즘의 아이디어를 무대의 3차원적 표현으로 확장한 예시로 평가받습니다.

Georges Braque의 Atelier VIII
Georges Braque의 Atelier VIII,1954[출처]https://www.wikiart.org

+ 알렉산드라 엑스터 (Alexandra Exter, 1882–1949) – 리듬과 색의 공간

대표 무대작품: Romeo and Juliet (1921), Medea (1920), Peer Gynt

주요 키워드: 오르피즘(Orphism) , 기하학 구성, 동적 시노그래피, 색채 리듬, 구조주의 무대 

엑스터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와 유럽 입체주의의 경계에서 활동하며, 무대를 색채와 리듬의 조형 실험장으로 바꾸었습니다. 여기서 오르피즘이란 큐비즘의 연장선에서 색채와 리듬, 음악성을 강조한 추상화 경향을 말하는데 그녀의 무대는 단순한 장치가 아닌, 동적 조형물로 구성되어 배우의 동작과 함께 무대가 ‘움직이도록’ 구상되었습니다. Medea,1920 에서는 오르피즘적 색면과 기하학 패턴이 극적 긴장을 고조시키며, 관객에게 시각적 음악성을 전달합니다. 이는 오늘날 멀티센서리 시노그래피의 원형으로 평가받습니다. 아래 그림 Romeo and Juliet 을 위한 무대디자인은 엑스터의 무대 작업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예로, 기하학적 구조선명한 색면, 그리고 동세(動勢)를 암시하는 구성이 결합된 시노그래피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장식적인 장치가 아닌, 무대 자체를 하나의 회화적 리듬으로 구성한 이 설계는 배우의 움직임과 조명 변화에 따라 공간 전체가 변화하는 동적 공간표현의 한 라 할 수 있습니다.

Alexandra ExterSet design for the play Romeo and Julietc
Alexandra Exter의 <Romeo and Juliet>을 위한 무대디자인,1921,[출처]MoMA: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38210

+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1869–1954) – 색면의 춤, 평면의 연극

대표 무대작품: Le Chant du Rossignol (1920, 디아길레프 발레)

주요 키워드: 포비즘, 색면 추상, 공간 납작화, 장식적 구성, 시각적 리듬 

마티스는 색채에 대한 조형적 감각을 무대로 확장하며, 전통적인 무대 공간을 색과 형식의 평면 장식화로 전환했습니다. Le Chant du Rossignol 무대는 공간감을 제거하고, 색면으로만 이루어진 납작한 시각 세계를 통해 움직임과 색이 하나의 시각적 음악처럼 작동하게 했습니다. 이 접근은 훗날 미니멀리즘 무대, 추상 시노그래피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아래 그림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를 기반으로 한 발레극이며,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음악, 마티스의 무대미술로 구성되었습니다. 인간과 기계(기계새), 자연과 문명의 대조가 중심 주제이며, 마티스는 이를 색면과 평면 구성으로 추상화했습니다.

앙리 마티스의 Stravinsky의 나이팅게일의 노래
앙리 마티스의 Stravinsky의 나이팅게일의 노래(Le chant du Rossignol),1920,[출처]브릿지맨이미지:www.bridgemanimages.com/

+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1912–1956) – 액션의 회화, 몸짓과 시간의 퍼포먼스

대표 회화: No.5 (1948), Autumn Rhythm (1950)

주요 키워드: 액션 페인팅, 드리핑, 행위 중심, 신체성, 무대적 회화

아래 그림《No.5》는 잭슨 폴록의 대표적인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 작품으로, 물감을 뿌리고 흘리는 ‘드리핑(dripping)’ 기법으로 캔버스 전체를 뒤덮은 추상화입니다. 회화적 구성이라기보다 신체의 궤적이 시간의 층위를 따라 캔버스 위에 남겨진 기록처럼 보이며, 관람자는 그 움직임과 에너지의 흔적을 따라 심리적 반응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회화가 **정지된 이미지가 아니라 하나의 사건(Event)**임을 제안하며, 이후 퍼포먼스 예술과 시노그래피에서 몸짓과 시간의 공간화에 지대한 영감을 줍니다.

폴록의 작업은 캔버스를 바닥에 펼치고 그 위를 걷거나 움직이며 그리는 방식으로, 회화 자체를 하나의 공연으로 전환했습니다. 이는 곧 무대예술에서도 신체의 흔적과 제스처의 공간화로 이어졌습니다. 폴록은 무대를 시각적 공간이 아닌 ‘행위가 남는 장(場)’으로 전환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잭슨 폴록의 No.5,
잭슨 폴록의 No.5,1948,[출처] ⓒ Wikimedia Commons

+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1903–1970) – 감정의 장막, 침묵의 색면 무대

대표 회화: Rothko Chapel Panels, Orange and Yellow (1956)

주요 키워드: 색면 회화, 명상적 공간, 감정 투사, 정지된 드라마, 빛의 무대화

로스코는 색을 통해 감정적 울림을 극대화하는 회화적 공간을 구현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무대 조명처럼 빛과 색이 감정을 유도하는 조형적 장면으로 읽히며, 무대에서 조명 설계나 무대배경의 추상화로 직접 연결됩니다. 특히 그의 작업은 정적이면서도 극적으로 응축된 시노그래피입니다.

아래《Rothko Chapel Panels》는 로스코가 미국 휴스턴의 명상 공간 ‘로스코 채플(Rothko Chapel)’을 위해 제작한 대형 색면 연작입니다. 이 작품군은 검푸른 회색과 자주빛 계열의 색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회화이면서도 공간 전체에 침묵과 내면의 감정을 확산시키는 설치적 구조를 지닙니다. 관람자는 이 패널들을 마주한 채 고요한 장막처럼 감싸는 색의 울림에 들어서게 됩니다. 이는 연극적 시간과 무대 조명 없이도 감정의 흐름과 깊이를 체험하게 하는 구성으로, 시노그래피가 조형과 감정의 중간 지점에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로스코는 이 작업을 통해 회화가 하나의 ‘내면적 무대’가 될 수 있음을 제안하며, 감정의 건축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Mark Rothko의 Rothko Chapel Panel
Mark Rothko의 Rothko Chapel Panel,ⓒHickey-Roberston [출처]www.wsj.com/

+ 윌렘 드 쿠닝 (Willem de Kooning, 1904–1997) – 형상의 격렬한 해체

대표 회화: Woman I (1950–52), Excavation (1950)

주요 키워드: 추상적 형상성, 파괴와 재구성, 몸짓 회화, 유동적 시공간, 형식의 해방

아래《Excavation》은 드 쿠닝의 대표적인 신체적 회화 실험 중 하나로, 화면 전체를 뒤덮는 격렬한 붓질과 형상 해체가 특징입니다. 이 작품은 마치 건축물의 해체와 재구성을 연상시키며, 인체의 일부와 기호들이 파편화된 채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색채는 제한적이지만, 조형의 밀도와 에너지로 가득하며, 관람자는 이 '시각적 격랑' 속에서 마치 무대 위의 몸짓처럼 강한 운동감을 체험합니다. 이 회화는 형상이 해체되고 재조합되는 과정을 '공간적 사건'으로 구현함으로써, 이후 시노그래피에서 무대의 해체와 재구성을 실험하는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드 쿠닝은 인물과 추상 사이를 유영하며, 형상에 대한 집요한 해체와 재조합을 통해 무대적 형식 실험을 가능케 했습니다. 그의 회화는 마치 움직이는 인체의 잔상처럼 보이며, 이는 무대에서 유동적 이미지 투사, 공간 해체적 조명 디자인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윌렘 드 쿠닝의 &lt; Excavation&gt;
윌렘 드 쿠닝의 < Excavation>,1950,The Willem de Kooning Foundation, New York © 2018 ,

🎭 결론: 분할된 시선에서 시노그래피가 태어나다

20세기 초, 큐비즘과 오르피즘은 회화의 틀을 깨고 무대라는 실험 공간을 향해 확장되었습니다. 피카소의 조형적 발레, 브라크의 건축적 장면, 엑스터와 마티스의 색면과 리듬은 무대를 더 이상 이야기의 배경이 아닌, **감각과 구조의 예술 장(場)**으로 변모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실험은 폴록, 로스코, 드 쿠닝으로 이어지며, 몸짓과 색채, 침묵과 격동 사이에서 무대는 하나의 살아 있는 공간으로 거듭납니다. 이들이 그린 무대는 단순한 장치가 아닌, 심리적 울림과 신체의 흔적, 감정의 지형을 담는 시노그래피의 전범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묻게 됩니다.
무대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형태와 감정, 리듬과 공간이 맞닿는 사유의 평면입니다.


**큐비즘과 오르피즘 간단 해설

  • **큐비즘(Cubism)**은 1907년경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에 의해 시작된 현대미술의 혁명으로, 사물을 단일 시점에서 보지 않고 여러 시점을 동시에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기법입니다. 전통적 원근법과 사실주의에 대한 반발로, 형태를 기하학적으로 해체하고 평면화하며, 시각적 공간의 다층성을 탐구했습니다.
  • **오르피즘(Orphism)**은 큐비즘에서 파생된 회화 경향으로, 로베르 들로네와 그의 아내 소니아 들로네 등이 주도했습니다. 구조 중심의 큐비즘과 달리, 색채의 음악성과 빛의 진동을 강조하며 보다 감각적이고 추상적인 시각 리듬을 추구했습니다. 무대에서는 오르피즘의 색채 감각이 조명 디자인과 동적 배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 이 시리즈는 『무대에 오르다2』 ①편 “회화가 무대에 오르다”의 연속 기획으로, 회화의 실험이 무대로 번져가던 시기를 작가 중심으로 추적합니다. ③편에서는 미래주의, 구성주의, 바우하우스 무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