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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권력/무대로의 틈입

『유령』의 무대, 무의식의 풍경 - 라인하르트와 뭉크의 시노그래피

by 스티븐C 2025. 6. 11.

1906년 베를린,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1873~1943) 와 화가 에드바르 뭉크 (Edvard Munch, 1863~ 1944 )입센(Henrik Ibsen, 1828~1906 ) 의 『유령』에서 독특한 협업을 펼쳤다. 이들의 시노그래피적 실험은 오늘날 공연예술의 경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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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장면

“저기... 저기 그가 와요, 목사님. 마치 생전처럼.”
— 헬렌 알빙, 『유령』 1막 첫 대사

이 한 문장은 낡은 집의 억눌린 공기를 뚫고 독자의 마음을 움켜쥔다.

피오르드의 음울한 풍경이 유리창 너머 안개의 커튼처럼 드리운다. 그 커튼을 가르며 다가오는 유령의 실루엣-. 바로 헬렌 알빙이 오랜만에 재회한 아들, 오스발드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장면이다. 유령처럼 다가오는 존재는 은 육신을 가진 아들이지만, 그의 병든 육체와 암시된 죽음은 이미 살아 있는 유령을 연상케 한다.

1906년 베를린 도이체스 테아터. 이 무대에선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선 정신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조명은 숨죽인 안개처럼 깔렸고, 벽지는 말라붙은 피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 모든 풍경은 관객이 한걸음 물러나 보는 연극이 아닌,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감각의 통로가 된다. 그곳에서 무대를 지휘한 이는 막스 라인하르트, 그리고 그 풍경을 시각화한 이는 에드바르 뭉크였다.

<유령>을 위한 뭉크의 무대 스케치
헨리크 입센의 희곡 <유령>을 위한 무대 디자인 스케치,1906, [출처] Henrik Ipsen x Gengangere x Edvard Munch

+『유령』의 전체 줄거리와 핵심 메타포

입센의 『유령』(1881)은 가부장제, 위선, 그리고 유산으로서의 죄를 다룬 심리극이다. 19세기 노르웨이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이 작품은, 당시엔 너무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공연이 금지되기도 했다.

줄거리는 이렇다:

미망인 헬렌 알빙은 죽은 남편의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된 삶을 살아가지만, 아들 오스발드는 그 유산—즉 육체적 질병과 정신적 고통—을 고스란히 물려받게 된다. 그는 진실을 알고 싶어 하고, 결국 진실은 오히려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역설로 작용한다.

이 작품에서 ‘유령’은 단지 죽은 이가 아니라, 억눌린 기억과 죄의식, 사회적 규범의 환영이다. 무대에 떠도는 그림자와 침묵이 그 유령이다. 입센은 현실을 해부해 심연을 드러냈고, 뭉크와 라인하르트는 그 심연을 무대 위에 가시화했다.

 

+ 욕망: 라인하르트와 뭉크의 협업 이야기

 “무대가 감정의 방이 된다” – 라인하르트의 연출

**막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는 연극을 시각적이고 공간적인 사건으로 탈바꿈시킨 혁신가였다. 그는 단지 텍스트를 무대 위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분위기를 전체 공간에 퍼뜨리려 했다.

막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 1873–1943)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연출가로, 20세기 초 유럽 연극계를 시각 중심의 무대예술로 이끈 연출자였다. 그는 무대를 단순한 대사의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심리와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공간으로 바꾸었고, 장대한 무대 미학과 빛의 연출, 상징주의적 구성으로 고전극의 현대적 재해석을 시도했다. 베를린 도이체스 테아터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유럽과 미국의 연극언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06년 유령』은 그에게 있어 단순한 고전극이 아닌, 침묵 속의 외침, 보이지 않는 고통의 공명이었다. 그는 그 고통을 시각적으로 구현할 방식을 고민했고, 그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이 에드바르 뭉크였다.

&lt;유령&gt;을 위한 뭉크의 무대 스케치
헨리크 입센의 희곡 <유령>을 위한 무대 디자인 스케치,1906, [출처] https://www.pubhist.com/w29604

 “고통은 색으로 침잠한다” – 뭉크의 무대스케치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는 당시 베를린에서 신경쇠약알코올 중독을 앓으며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혼돈의 내면은 오히려 『유령』이라는 작품과 기이하게 공명했다. 뭉크는 자신의 고통을 통과시켜 무대를 재구성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스케치를 제시했다:

  • 창문 밖에는 흐릿하게 피오르의 윤곽이 번지듯 흐르고,
  • 벽지는 거칠고 피멍 든 살결처럼 일그러져 있으며,
  • 조명은 숨을 들이쉴 때마다 깜빡이며 병든 시야처럼 떨린다.

이 무대는 오스발드의 병든 육체가 아니라, 그의 심리적 붕괴를 시각화한 공간이었다. 뭉크는 말하자면 ‘공간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공간으로 느끼는 법’을 제안했다.

 

에피소드: 무대 위의 불화와 환희

초기 리허설에서 라인하르트는 뭉크의 스케치를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익숙하지 않은 시각이었기 때문이다. 프로듀서와 디자이너 사이에는 잠깐의 침묵이 흐른다.

하지만 그는 며칠 뒤 바뀐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유령을 구현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이미지가 있을까? 그는 무대를 회화로 만든 것이 아니라, 병든 영혼의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이 고백 이후, 뭉크의 디자인은 몇 차례 수정되었지만 본질은 그대로 무대에 반영된다. 1906년 11월 8일, 도이체스 테아터에서의 초연은 관객과 비평가 모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이후 “무대 그 자체가 심연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lt;유령&gt;을 위한 뭉크의 무대 스케치
Set Design for Henrik Ibsen's "Ghosts" [이미지 출처]https://zone47.com/crotos/?q=18890849

그 무대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뭉크의 무대디자인은 단지 장식이 아니라, 감정의 건축이였다. 그의 스케치는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하나의 인물, 하나의 병, 하나의 진실이었다. 그는 “무대를 살아 있는 유기체로 만들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오늘날 그의 스케치는 오슬로 뭉크미술관에 보존되어 있으며, 일부 복제본은 디지털로 공개되어 있다:

👉 https://www.munchmuseet.no/en/our-collection/when-the-room-is-the-main-character/

그림은 여전히 숨을 쉰다. 무대를 보는 시선도, 100년 전 뭉크의 눈동자에 닿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라인하르트와 뭉크의 협업은 단순한 만남이 아닌, 무대예술과 시각예술이 서로의 고통을 건드린 역사적 순간이었다.


📌 마무리

『유령』의 뭉크 스케치 복제본, 입센 전집, 관련 다큐멘터리 DVD, 그리고 뭉크의 무대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포스터 아트 상품들을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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