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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바이브/영화

이념의 담장 사이로-정치적 무관심 그리고 《존 오브 인터레스트》

by 스티븐C 2025. 6. 4.

 

2025년, 6월 대한민국-. 계엄, 탄핵, 파면 그리고 대선이라는 정치적 격랑이 휩쓸고 다시- 여름이다.  자리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사라진 관심과 더욱 깊어진 냉담의 골이다. 일상으로 복귀한 듯 보이지만, 저 너머로는 여전히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는 시간이다. 느닷없이 작년 이맘때쯤 본 영화 한 편이 떠오른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공간을 병치시킨 비정한 일상 이야기. 오늘 왜 그 영화를 곰씹게 될 까.

존 오브 인터레스트 포스터 이미지
존 오브 인터레스트 이미지 [출처]나무위키

 정원 너머, 절멸의 소리-《존 오브 인터레스트》와 오늘의 정치적 무관심

 

+ Attention: 정원이라는 이름의 경계

영화는 햇살 가득한 정원에서 시작된다. 웃음소리, 짖는 개, 꽃피는 풍경…주인공 루돌프의  정원 위장된 질서처럼 매끈하다. 그러나 그 너머, 프레임 바깥에는 감시첨탑과 수용소, 그리고 굴뚝이 묘한 눈높이에 걸린다. 1943년, 폴란드 아우슈비츠를 배경이다. 화면을 가득 채운 공간은 루돌프 회스의 저택이고  담장 너머는 수용소다. 이쪽은 꽃을 가꾸고 채소를 키우지만,  저쪽은 인간을 절멸하는 소각로이다. 그 사이에 가로놓인 담장은 아이러니한 세계가 만나는 경계선이다.

+ Interest: 프레임 바깥에서 들려오는 침묵의 무대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카메라가 단 한 번도 수용소 내부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사운드는 프레임을 넘나든다. 기차의 마찰음, 호루라기 소리, 포성, 비명, 그리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검은 연기… 시청각의 단절은 오히려 윤리적 감각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 장면은 매우 시노그래피적이다. 무대 장치가 조명을 포기하고 ‘침묵’을 구성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이 영화는 “무대를 비워두는 방식으로 감정을 채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관객은 질문 받는다:
“당신의 정원은, 그 담장 너머를 상상하고 있는가?”

+ Desire: 그리고, 우리의 시선

그 정원 안쪽의 풍경을 매우 그로테스크하다. 가족은 꽃을 가꾸고, 아이는 뛰놀며, 어머니는 바느질을 한다. 아버지는 호미로 흙을 뒤집는다. 그러나 그날, 검은 연기가 바람을 타고 정원 안으로 스며든다. 하늘빛 사이를 떠다니던 잿가루는 조용히 꽃잎 위에, 아이의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낯선 냄새가 공기를 가르며, 평온했던 장면은 더 이상 평온이 아님을 드러낸다. 담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기관차 기적, 호루라기, 비명-. 그러나 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는다. 정원은 침묵해야 하고, 무관심은 이곳의 질서다. 이 장면은 더 이상 영화가 아니다. 우리의 일상 그 자체이며, ‘존재하지 않음으로 존재하는 무대’, 시노그래피가 윤리를 호출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무감각의 무대 한가운데서 루돌프는 복도에서 구토한다. 단순한 생리 반응처럼 보이지만, 이는 정원과 수용소, 삶과 절멸, 분리와 침투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첫 징후다. 그는 여전히 담장 너머를 바라보지 않지만, 비명과 재, 냄새와 침묵은 이미 그의 몸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 구토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윤리적 자각이며,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전이(Transference) - 억압된 현실이 신체를 통해 무대 위로 터져 나오는 시노그래피적 폭발이다. 루돌프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영화가 가장 강렬히 드러내는 건 인간의 심리적 분할(compartmentalization)이다. 루돌프 가족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삶과 죽음을 물리적, 정신적으로 분리한다. 그것은 현대 사회가 고통을 ‘관심 밖’으로 밀어내는 외면의 정치(Politics of Detachment), 침묵의 시스템이다.

+ 대한민국, 우리의 정원은 어디에 있는가

2025년 6월, 우리는 또 하나의 대선을 지나왔다. 분열과 피로, 냉소의 정치는 국민을 ‘각자의 정원’으로 밀어넣었다. 무엇을 먹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콘텐츠를 소비할 것인지 , “아이 돈 케어(I don’t care)”, 그것은 더 이상 무심한 말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든 윤리적 무감각의 선언문이 되었다. 그 담 너머에서 들려오는 비명은 이제 잡음으로 분류된다. 뉴스는 지나가고, 콘텐츠는 넘겨지고, 절규는 침묵 속으로 묻힌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그 정원의 고요함에, 너무 익숙해진 건 아닙니까?”

+ Action: 왜 이 영화를 봐야 하는가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단지 홀로코스트를 다룬 역사영화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무관심이 만든 현대의 무대이며, 그 안에서 반복되고 있는 감정의 소거와 윤리의 실종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침묵은 하나의 조명이다. 보이지 않음은 하나의 무대장치다. 그리고 무관심은 하나의 연출이자 공모다.
이 영화는 스펙터클을 거부하면서 더 깊은 몰입을 요구한다 —
무대 바깥을 상상하는, 윤리의 시노그래피.

존 오브 인터레스트 이미지
존 오브 인터레스트 이미지 [출처]https://blog.naver.com/s_hi/223685119183

🏆 수상 내역
2024 제76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외 4관왕
2024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음향상 포함 2관왕
비평가 평점: Rotten Tomatoes 92%, Metacritic 94점

🎬 관람 정보
영화 제목: The Zone of Interest (존 오브 인터레스트)
감독: 조너선 글레이저 (Jonathan Glazer)
원작: 마틴 에이미스 (Martin Amis)
국내 개봉: 2024년 6월
러닝타임: 105분
IMDb 링크: https://www.imdb.com/title/tt7160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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