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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제대 위의 시노그래피

제대 위의 시노그래피 : 중세 종교극의 탄생

by 스티븐C의 VIBES 2025. 5. 3.

🎭 제대 위의 시노그래피 : 중세 종교극의 탄생

"성당이 무대가 되었을 때, 연극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 교회가 공연물을 교회 내부로 기획하게 된 동기

중세의 제대 위에 선 시노그래피는 단지 무대 장치의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실천이 바로 교회 안에서의 공연입니다.
수도사들은 그리스 고전문학의 필사본을 통해
연극적 기법을 도입했고, 그것은 결국 교회 공간 전체를 연극 무대로 전환하는 시도로 이어졌습니다.

로마 연극이 이교적 요소로 간주되어 추방된 이후,
교회는 민중들의 축제적 에너지집단 감각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비록 연극은 한때 사탄의 유산이라 여겨졌지만,
민중의 감각 속 깊이 각인된 공연적 체험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억압이 아니라 흡수, 배제가 아니라 재구성을 선택한 것입니다.
복음을 감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회는 성당 내부, 즉 제대 위에서 연극을 새롭게 부활시키기로 합니다.
이것이 바로 **중세 리투르지컬 드라마(Liturgical Drama)**의 탄생 배경입니다.

이 결정은 단순한 교리 교육의 방법을 넘어서
시노그래피적 공간 감각을 가진 기획이었고,
그로 인해 중세 연극은 다시 신성한 공간 안에서 숨을 쉬게 됩니다.

 

교회안에서 전례극하는 한 장면
교회안에서 전례극하는 한 장면

 


전례 구성과 성당 내부의 시노그래피적 질서

중세 교회에는 두 종류의 예배가 있었습니다.
**미사(Mass)**와 **정시 기도(Divine Office)**입니다.
미사는 다시 전례성찬으로 나뉘며,
전례는 성서 낭독, 기도, 찬송, 설교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례는 **교회력(Church Calendar)**에 따라 극적으로 변화하며 진행됩니다.

교회력은 태양력을 기준으로 하며,
대림, 성탄, 사순, 부활, 연중 등의 시기로 나뉘어
매 주일과 축일마다 극화된 장면을 연출하는 정교한 시간적 드라마였습니다.
예를 들어, 종려주일에는 도시 외곽에서 예수가 당나귀를 타고 입장하는 장면이 재현되었고,
성금요일에는 십자가가 성의(聖衣)에 덮여 상징적 무덤에 눕혀졌습니다.
부활절에는 다시 그 십자가를 제대 위에 세우며 빛과 음향, 몸짓을 통해
신비의 순간이 구현되었지요.

이런 과정에는 사제들의 판토마임,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
향기, 노래, 손짓 같은 복합적 요소들이 관객과의 감각적 소통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결국 전례 자체가 하나의 시노그래피적 내러티브였던 것입니다.


🎶 교회가 **비신자(민중)**들에게 주는 영성적 울림

세속적 삶으로부터 단절된 교회 건축물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영성 경험이었습니다.
많은 민중들이 이 공간을 찾아들었고,
그들은 성당 안에서 잠시 마음을 내면 깊이 침잠시키는 정적(靜的) 묵상에 빠지게 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빛,
아치형 고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외광,
그리고 성가대석에서 울리는 **영창(詠唱)**은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며
그 공간을 신성한 메타버스 인도하게 합니다.

빛은 수직의 흐름을 따라 떨어지고,
소리는 설명할 수 없이 맑고 순수한 크리스탈처럼
공간을 맴돌며 감정을 자극합니다.

 

**중세 전례극에서 사용된 성가는 대부분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였습니다.

참고로

  • 그레고리오 성가는 6세기 말~7세기 초,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가 집대성한 로마 전례 성가입니다.
  • **무반주 단선율(monophonic)**로 구성되어 있으며, 라틴어로 불립니다.
  • 주로 성경 구절, 시편, 기도문을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단지 음악이 아니라, 전례극의 구조와 감정선을 휘어잡는 핵심 시노그래피 요소의 하나였습니다.
성가는 단지 소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과 감정을 끌어올리는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신성한 울림 상자였던 것이지요.

 

 

전례극 안에서의 역할 – 그레고리오 성가와 시노그래피

인트로이투스 (Introit) 입장 음악 – 등장 인물의 성스러움 표현 Dominus dixit ad me... (주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그라두알레 (Graduale) 대사 없는 침묵 장면의 감정 강조 – 슬픔, 경외심 사순절, 성금요일에 주로 사용됨
알렐루야 (Alleluia) 절정 장면 – 부활, 수태고지 등 극적 상승감 전달 Alleluia, Pascha nostrum immolatus est
오페르토리움 (Offertory) 제물과 희생의 상징 – 예수의 수난과 연결 십자가 수난극 중 사용, 제단 장면과 결합
코무니오 (Communio) 공동체와의 영적 연결 – 마무리 장면에서 합창처럼 사용 부활절, 성탄절 클로징에 주로 등장

 

https://www.youtube.com/watch?v=PJxH5u5ZDA0&t=67s

 


🏰 '맨션(Mansion)'이라 불리는 에피소드 구성의 방식

교회극의 중심은 전례였습니다.
하지만 이 전례는 정적인 설교가 아니라 에피소드 단위의 구성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때 사용된 공간 장치가 바로 **‘맨션(Mansion)’**입니다.

맨션은 각각 예수의 생애와 수난, 부활에 등장하는 상징적 장소를 나타냅니다.
예를 들면 베들레헴의 마굿간, 예루살렘 성전, 헤롯왕의 궁전, 골고다 언덕,
그리고 무덤과 천국, 지옥 등이 그것이지요.

관객들은 교회 공간 안을 도슨트 투어하듯 이동하며,
각 맨션 앞에서 **하나의 장면(에피소드)**를 관람합니다.
이때 배우들은 수도사 혹은 사제들이었고,
무대는 단지 제대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로 확장됩니다.

 

맨션의 한 형태

 

맨션의 정확한 형태는 지금으로선 알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성서에서 말하는 “지성소”,
또는 “하늘에 있는 모상을 본뜬 재현”일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에서는 성소의 구조를 “첫째 성막, 등잔대, 상, 제사 빵, 지성소” 등으로 묘사하며
이와 유사한 배치가 교회 안의 맨션들에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맨션들은 때로 작은 의자와 소품,
또는 캐노피와 커튼으로 장식된 간이 건축물로 구성되었으며,
중세 장인의 손길로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웠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이 맨션과 맨션 사이를 잇는 동선은
‘플레테아(platea)’ 혹은 **‘플레인(plain)’**이라 불리며,
무대의 중성 공간 또는 행위의 경유지로 기능하였습니다.


이처럼 중세의 교회는 단지 기도하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빛, 소리, 움직임, 상징, 공간 구조가 어우러진
총체적 시노그래피의 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인간은 다시 신 앞에서 연기자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