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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 무대공방 - 오스카 슐레머가 남긴 몸의 건축학

by 스티븐C 2025. 6. 29.

바우하우스의 무대공방을 이끈 오스카 슐레머를 소개합니다. 20세기 초, 인간의 몸과 예술, 공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했던 그의 실험은 단순한 안무를 넘어선 존재론적 제안이었습니다. ‘3조 발레’, ‘공간 무용’, ‘철사 무용’, ‘장대 무용’ 등 독창적인 작품들을 통해, 그는 무대 위의 인간을 마치 기계처럼 조직하고, 움직임을 구조화된 언어로 번역해냈습니다. 

schlemmer 의 3조 발레 의상 이미지
오스카 슐렘머의 3조 발레 의상 이미지,1924~26,[이미지 출처]https://www.facebook.com/groups/artdeco1930/posts/10158129219716561/?locale=zh_CN

+ 서문: 무대 위에서 태어난 추상의 언어

한 명의 조각가가 있었다. 그는 돌 대신 인간의 몸을 다루었고, 캔버스 대신 무대를 선택했다.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 1888–1943)**는 바우하우스의 시대, 무대라는 시공간을 기하학적 추상인간 신체의 대화를 위한 실험실로 삼았다. 그가 창안한 **‘3조 발레(Triadisches Ballett)’**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낯설고도 혁신적인 울림을 남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단순한 무대미술이나 무용의 형식 실험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과 기계, 유기체와 구조, 감성과 알고리즘 사이의 경계에 대한 깊은 질문이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질문을 다시 마주하고 있다. 이번에는 단지 기계가 아니라,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존재를 앞에 두고. 바우하우스와 오스카 슐레머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결국 무대 예술과 인간 존재, 그리고 기술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다시 묻게 된다. 슐레머는 그 물음에, 몸으로 말하는 하나의 대답을 남겼다.

하우스의 교수들. 가운데가 설립자 발터 그로피우스, 바우하우스 50주년 기념 전시 포스터, 1968년
바우하우스의 교수들. 가운데가 설립자 발터 그로피우스, 바우하우스 50주년 기념 전시 포스터, 1968.[출차]https://inmun360.culture.go.kr/content/357.do?mode=view&cid=2365393

+ 바우하우스(Bauhaus) 란 무엇인가 :  예술과 기술의 총체극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혼돈 속에서 독일 바이마르에 ‘바우하우스(Bauhaus)’라는 새로운 예술학교가 문을 열었다.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1883–1969)**가 주도한 이 학교는, 공예와 순수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예술과 산업, 손과 기계, 조형과 실용의 통합을 꿈꿨다.

미래의 건축은 조형예술의 총체극(Gesamtkunstwerk)이어야 한다.” 이 선언 아래, 바우하우스는 회화, 조각, 디자인, 무대, 타이포그래피, 사진, 공예 등 다양한 예술 영역을 통합적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1925년 **데사우(Dessau)**로 이전하며 본격적인 산업 연계 교육을 시작했고, 1932년 나치의 탄압 아래 베를린으로 옮겼다가 1933년 결국 문을 닫는다. 하지만 그 짧은 14년간의 실험은 20세기 이후 예술과 디자인, 건축,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바우하우스의 공방 체계 소개

바우하우스는 ‘마이스터(장인)-학생’ 시스템을 바탕으로 공방(Werkstätten) 중심의 실기 교육을 강조했으며, 예술가이자 동시에 기술자, 제작자여야 한다는 원칙 아래 다양한 공방이 운영되었다. 대표적으로는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의 건축공방,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 1902–1981)**의 목공방, **라슬로 모호이너지(László Moholy-Nagy, 1895–1946)**의 금속공방, **아니 알버스(Anni Albers, 1899–1994)**가 이끈 직조공방,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의 벽화·색채공방,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의 조형공방, 그리고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의 무대공방이다.

오스카 슐렘머의 공간무용 중 금속무용
오스카 슐렘머의 공간무용 중 금속무용,1929 , Bauhaus. ©Bauhaus [출처]https://www.elespace.io/wiki/page/e/things/page/68

+ 무대공방과 오스카 슐레머의 등장

1923년, 바우하우스가 첫 공개전을 열었을 때, 관람객들은 전시된 가구나 회화보다도 밤에 공연된 무대공방의 발레에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인간의 몸과 공간이 직조해낸 하나의 추상이었다. 이 중심에 조각가 출신의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가 있었다.

슐레머는 인간을 미학적 오브제로 간주했다. 그의 눈에 몸은 움직이는 조각이었고, 무대는 그것을 배치하는 평면이었다. 그는 인간이 공간 속에서 어떻게 기하학적으로 구조화될 수 있는지를 탐색했다. 그로피우스는 슐레머의 무대 실험에 깊은 지지를 보냈으며, 무대공방은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장이 되었다.

+ 오스카 슐레머의 대표 실험

슐레머의 무대 실험은 무용과 시각예술, 조형구성과 무대기술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전방위적인 예술언어를 창조했다. 그는 배우나 무용수를 '표현하는 주체'로 보기보다 '형태를 전달하는 구조체'로 다루었다. 그 대표작이 바로 **‘3조 발레(Triadisches Ballett, 1922)’**다. 이 작품은 3명의 무용수, 3막 구성, 18가지 의상으로 이루어진 공연으로, 무용수의 움직임3보다는 코스튬과 색채, 공간배치가 중심을 이룬다.

의상은 단순한 무대의상이 아니라, 움직임을 제한하거나 유도하는 움직이는 조각이자 건축적 장치였다. 솜을 넣어 과장되게 만들거나 원, 구, 원통, 각기둥으로 구성된 이 의상들은 무용수의 동작을 형식화하고 공간과의 상호작용을 유도했다. 이는 오늘날 로봇무용, 인터랙티브 아트, 무대 드로잉의 원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는 ‘공간무용(Raumtanz), ‘철사무용(Drahttanz), ‘장대무용(Stabentanz) 등을 통해 몸과 오브제, 동작과 구조, 인간과 공간의 새로운 조합을 실험했다. 각각의 퍼포먼스는 형태와 운동, 관객과의 거리, 무대의 확장성을 주제로 다루며, 21세기 미디어 퍼포먼스에 앞선 개념적 토대를 마련했다. 이러한 작업은 오늘날 **휴먼 로봇(human robot)**을 연상케 하며, 인간의 움직임이 어떻게 프로그래밍 가능한 형식으로 번역될 수 있는지를 예견한 실험으로도 읽힌다.

오스카 슐렘머의 공간무용 중 장대무용
오스카 슐렘머의 공간무용 중 장대무용 1921-9. Bauhaus. ©Bauhaus [출처]https://www.elespace.io/wiki/page/e/things/page/68

+ 슐레머 이후 : 현대 무용과 무대예술에 남긴 영향

슐레머의 실험은 단지 한 시대의 예술적 기교로 머물지 않았다. 그의 시도는 **피나 바우쉬(Pina Bausch)**의 탄츠테아터(Tanztheater)와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의 모션 구조, **오하드 나하린(Ohad Naharin)**의 가가(Gaga) 테크닉 같은 현대무용의 주요 전개 방향에 개념적 기반을 제공했다. 특히 신체와 공간의 조형성, ()내러티브적 구성, 관객과의 거리 실험은 20세기 후반 무용의 패러다임 전환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한 그의 무대 언어는 오늘날 미디어 아트, 퍼포먼스 아트, 인터랙티브 시노그래피 등으로 확장되며, AI와 인간, 알고리즘과 창작주체 간의 경계를 재조정하는 미래지향적 창작 실험에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슐레머의 인형과 같은 무용수는 오늘날 감정과 움직임을 흉내 내는 AI 아바타의 전조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시 말해, 그의 무대는 곧 오늘날의 인터페이스이고, 그의 무용수는 인간-기계 하이브리드의 원형인 셈이다.

슐레머는 인간을 해체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을 재구성했고, 그 재조합의 질서 속에서 새로운 무대미학을 제안했다. 그의 유산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우리가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그 어떤 존재를 마주할 때마다 되살아난다.

+ 맺음말 : 인간과 기계, 추상과 정념 사이

슐레머는 인간을 해체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을 재구성했고, 그 재조합의 질서 속에서 새로운 무대미학을 제안했다. 기계적 인간이 아니라, 인간적인 기계로서의 존재를 사유하게 만든 그의 실험은, 오늘날 우리가 AI와 협업하는 예술 환경 속에서 더욱 선명한 울림을 지닌다.

그의 무대는 단지 표현의 장이 아니라, 철학의 무대였다. 몸의 논리, 공간의 구조, 감정의 기호학이 맞물리는 그 장면들은, 오늘날 디지털 인터페이스인공지능 퍼포먼스가 구현하려는 감각적-기계적 하이브리드의 전조처럼 보인다. 그가 남긴 의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무대 위에 서 있는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움직이는가?"

오스카 슐렘머의 공간무용 인물들
오스카 슐렘머의 공간무용 인물들 1921-9. Bauhaus. ©Bauhaus [출처]https://www.elespace.io/wiki/page/e/things/page/68

+ 참고 문헌 및 추천 자료

  • Gropius, Walter. The New Architecture and the Bauhaus. MIT Press.
  • Wingler, Hans M. The Bauhaus: Weimar, Dessau, Berlin, Chicago. MIT Press.
  • Whitford, Frank. Bauhaus. Thames & Hudson.
  • Müller, Hedwig. Oskar Schlemmer: Das Triadische Ballett und die Bauhausbühne. Hatje Cantz.
  • Bauhaus Archive Berlin 공식 웹사이트: https://www.bauhaus.de/en/
  • 영상 자료: Triadisches Ballett (1922/1970), Bayerisches Fernsehen 기록 → YouTube 검색 링크
  • 시노그래피 카페 관련글: 《이미지 권력 인형》 제1~2편. The New Architecture and the Bauhaus. MIT Press.
  • Wingler, Hans M. The Bauhaus: Weimar, Dessau, Berlin, Chicago. MIT Press.
  • Whitford, Frank. Bauhaus. Thames & Hudson.
  • Müller, Hedwig. Oskar Schlemmer: Das Triadische Ballett und die Bauhausbühne. Hatje Cantz.
  • Bauhaus Archive Berlin 공식 웹사이트: https://www.bauhaus.de
  • 영상 자료: Triadisches Ballett (1922/1970), Bayerisches Fernsehen 기록